
"비가 오길 간절히 소망해 봐. 그리고 네 소망이 이루어지는 날 조심스럽게 귀를 기울이는 거야.
어렵지 않아. 자, 들어봐. 빗방울이 꽃잎 위를 경쾌하게 두드리는 소리, 나뭇잎이 신이 나 몸을 흔드는 소리, 귀찮아하며 가지를 툭툭 터는 커다란 나무와 한가득 비를 품고 웃는 부드러운 흙이 발바닥을 간질이는 소리가 다가오고 있어.
구름이 같이 놀자며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는 모습도, 저 멀리서 시샘하는 태양이 흥흥 콧방귀를 뀌며 멀리 떠나자 곁에 불쑥 다가와 고개를 내미는 그림자가 보이니?
귀를 기울여봐. 눈을 뜨고 꿈을 꾸는 것처럼 바라보는 거야.
어때? 수많은 언어가 네 곁에 쏟아지고 있지 않니?"
1. 르네 로르젤(Lynette Lohrzehl)
안녕! 좋은 아침이에요.
오늘은 꽃에 물을 줄 거예요. 서른 그루의 나무를 지나면 작은 샘이 나와요. 그 샘을 빙 둘러 더 걸어가면, 그러니까 여섯 그루의 나무를 또 지나가면 넓고 아름다운 꽃밭이 나와요. 정말 예쁜 꽃들이 많이 피어 있어요. 제 친구는 그걸 흐…흩어…흐트러지다? 흐드러지다? 여하튼 그렇게 말했어요. 제 친구는 저보다 나이도 많고, 아주 많은 책을 읽어서 어려운 단어도 척척 써요. 정말 정말 어른스럽죠? 제 친구는 머리카락이 분홍색인데 저번에 본 꽃이랑 비슷해서 예쁜 화관을 만들어 줬어요. 요새 기침을 자주 하는 것 같아서 큰일이에요. 그런데 제가 어디까지 이야기했죠? 아, 맞아. 꽃이 아주 많은데, 거기에 물을 주러 갈 거예요. 물을 어떻게 주냐구요? 음, 이건 우리끼리의 비밀인데요, 제 다른 친구는요, 물이랑 정말 친해요. 얼마나 친하냐면, 비가 왔으면 좋겠다~ 라고 소원을 빌면 잠시 후에 이슬비가 내려요. 정말이에요. 그럼 꽃잎에 앉아 있는 아주 작고 반짝이는 날개를 단 친구들이 웃으면서 좋아해요. 흩어지는 작고 여린 빗방울을 모아 동그란 공을 만들어 놀기도 하구요. 그러면 꽃들도 신나서 춤을 춰요. 초록 이파리와 무지개를 닮은 꽃잎이 덩실덩실 흔들흔들 얼마나 즐거운지 아시나요? 모른다구요? 그럼 오늘 꼭 보여줄게요!
2. 에'레비(E'Levi)
맑음! 내일도 맑았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비가 싫은 건 아니야!
오늘은 레리가 처음으로 숲에 왔던 날이야. 어떻게 기억하냐면, 르네가 알려줬어. 그치만 나도 아~ 그랬구나~ 하고 떠올렸으니까 나도 기억하고 있었던 거 맞아.
오늘 르네랑 레리랑 같이 꽃밭에 갈 거야. 르네는 꽃밭에 이름을 붙이자고 했는데, 레리는 뭐든 다 좋대. 나랑 르네랑 열심히 후보를 만들었는데, 레리가 다 좋다고 해서 결국 공평하게 아무것도 안 붙이기로 했어. 그러니까 꽃밭의 이름은 '아무 이름도 붙이지 않아서 아무 이름도 없는 꽃밭' 인 거야!
르네가 꽃밭에 물을 주고 싶다고 해서, 레리랑 같이 가기로 했어. 레리는 많이 아픈데, 괜찮아졌다가도 갑자기 기침을 막 해. 너무 아픈데 꽃밭에 가고 싶다고 해서, 나랑 르네가 손잡고 같이 가기로 했어. 가서 레리가 많이 웃고 건강해졌으면 좋겠다. 왜냐면 나는 친한 물 친구들이 있어서, 레리가 감기에 걸리지 않을 만큼만 비를 내려달라고 부탁할 수 있거든. 르네랑, 레리랑, 요정이랑… 아주 많은 친구들이랑 즐겁게 놀 거야!
3. 레테 리슈아(Lethe Lishua)
기침을 한동안 달고 살았더니 목에서 피가 나는 것 같다. 병마에 시달리며 가늘고 길게 사는 것이 특기인 집안의 핏줄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탓이겠거니 한다.
차도가 없자 작은 친구들이 커다란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침대 양쪽에 매달려있다. 저렇게 보니 꼭 책갈피를 꽂아 둔 것 같아서 기분이 묘했다. 그럼 나는 책인가? 마침 꼬리도 달려 있겠다, 가름끈이나 다름없어 제법 그럴싸한 상상이 됐다.
아주 대단한 선물을 준비했다며 입가를 씰룩이는 레비와, 옆에서 입을 꾹 다물고 엄격한 척 하지만 볼이 씰룩거리고 있는 르네를 보고 웃음을 참아낸 나 자신이 대견했다. 때맞추어 기침이 터져 다행이라고 조금 생각하긴 했지만.
자연과 감응하는 능력이 뛰어난 둘이 뭘 준비했을지 눈에 선해서 모르는 척 준비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저렇게 즐겁고 행복한 얼굴인데 초를 치고 싶지는 않아 얌전히 누워있었다. 작은 친구들의 정성만큼만 더 건강해질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더 많은 것을 함께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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